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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슈틸리케 인터뷰, 슈틸리케 차두리 (울리 슈틸리케 감독, 슈틸리케 경력, 슈틸리케 선수시절, 슈틸리케 기자회견, 슈틸리케 가족, 슈틸리케 한국어, 슈틸리케 국적, 슈틸리케 이정협)

프레즈s 2015. 4. 13. 09:23

2015년 상반기, 대한민국 리더십 핫 키워드 '울리 슈틸리케' 그는 리더십의 부재로 호흡곤란에 빠진 대한민국에 '슈틸리케 매직'이라는 인공호흡기를 달아 주었습니다.





스스로 승리주의자라 칭하며, '지지 않은 축구'를 지향하는 울리 슈틸리케! 과연 슈틸리케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sbs스페셜 슈틸리케 인터뷰, 슈틸리케 차두리

슈틸리케 리더십을 부탁해!

 

 

* 차가운 남자? No, No, 따뜻한 남자!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와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지키는 남자 슈틸리케 감독은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남자입니다. 하지만 직접 만난 슈틸리케는 반전 매력남이며,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처럼 푸근한데 심지어는 축구공 하나로 배성재와의 24살의 나이 차이를 가뿐히 극복한 슈틸리케 감독입니다. 스페인과 독일에서 날아온 지인들의 영상메시지에는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시 축구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희망이 없었다면

 

 

* 아들의 사망..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인생에서 세 번의 아픔을 겪었다고 말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첫번째 아픔은 스물두살 무렵 바로 22개월 동안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것 입니다. 처음 맡은 감독직에서 퇴출당한 건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다고 말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그리고, 축구인생은 물론 그의 삶을 통틀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아픔은 막내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데 합니다. 그라운드에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인생 굴곡이 그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대표 팀을 맡은 슈틸리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싸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며,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그는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만둣국에 김치를 맛보는 것으로 부족해 아예 한국에서 새 둥지를 틀고 싶다고 말하는데..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의 선전은 물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힘쓰겠노라 선언한 슈틸리케 감독은 유소년 축구부터 K리그까지 한국 축구의 밑바닥부터 훑고 다니는 것은 기본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61세의 독일인 슈틸리케 감독은 그 진심어린 행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게 잊지 못할 밤이 되었습니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치밀하면서도 점잖고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축구대표를 지낸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지만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냈으며, 주전 수비수로서 1977년부터 8시즌 동안 3차례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최고 외국인 선수상을 4차례 받았습니다. 당시 동료로는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축구 대표팀 감독이 있으며, 선수 시절 슈틸리케는 거칠었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저먼 팬저(German Panzer, 독일 전차)'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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